'잘난 인간과 지극히 평범한 인간 중 무엇이 되고 싶은가?'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택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니 뭐니 진부한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도대체 누가 평범하게 살고 싶겠냐는 것이다. 설사 아무리 평범한 인간 일 지라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본인이 남들보다 잘 나거나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글은 '본인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 본인이 주변보다 월등히 뛰어나거나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조용히 나의 다른 글들을 읽으러 가길 바란다. 필자도 한 때 우물 안 개구리 처럼 '난 저들과 달라!' 같은 식의 마인드에게 잠식된 적이 있었지만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 스노비즘, 지적 허영심(?) ]

  스노비즘(snobbism)이란,

어떤 대상의 알맹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해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 및 허영을 나타내는 문화사회학 용어이다. 예컨대 상품서비스업 등의 서열화, 아파트 브랜드 펫네임이나 상품명(혹은 제품 설명) 등에 남발되는 외국어(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보그체 등), 그 외 학교의 명문화 등으로 부동산을 제고하려는 시도 등이 있다. 적절한 국어 순화어로는 '문화 허영'이 있다.

세간에서 '얕은 지식으로 허세를 부리는 눈꼴사나운 태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축소해서 쓰는 유행어는, 사실상 이 학술 용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이 유행어는 문화 전반이 아닌 지적인 측면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상 스노비즘의 허영 문화는 그보다 외연이 넓다. 그러므로 이 때의 유행어는 '지적 허영', '지적 스노비즘(속어로는 좆문가)'로 축약해 표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스노비즘에 대해 잠깐 훑고 넘어가겠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스노비즘이란 말 그대로 지적 허영심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내가 이 개념을 꺼내온 이유는 앞으로 이야기 할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필수적인 요소로 꼭 독서를 한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 그거 지적 허영심을 위한 거 아냐?" 식의 비아냥 뿐이었다. 그 친구는 확실히 학창시절 공부도 잘 했던 친구였고 수학사고능력은 객관적으로 뛰어났지만, 나는 지난번의 계기로써 인간의 지능이라는 것은 결코 단일화 된 수치로 정의 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여기서 오해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지능' 이라는 워딩일텐데, 제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그 친구를 절대 '저능아' 따위로 비하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인간이 타고나거나 개발되는 지능의 종류에는 수학능력적 지능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능, 근신경계 지능 , 운동능력 지능 등등 너무나도 복합적인 지능들이 존재하고 이 조차도 하나의 신경회로로 작동 할 수가 없다. (이건 어릴 적 트라우마 혹은 청사진 , 유전적인 한계 등등 너무나도 복잡하다)

 

 앞서 늘어놓은 내용을 읽어보았다면 혹 어떤 독자는 이런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과연 지적 허영심은 나쁜 것인가?' 나는 이 명제에 대해서 나름의 방식대로 깊게 생각을 해 보았다. 이 글에서는 진부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재미없는 가치판단은 잠시 넣어둘 것이기 때문에 '타인을 비하하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다느니' 와 같은 지루한 문장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 스노비즘, 지적 허영심은 나쁜(잘못된) 것인가? ]

 

   공교롭게도 나는 이런 지적 허영심에 대해 나쁘다(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 하기에 앞서 , 인간에게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법칙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잘 바뀌지 않는다' 라는 점이다. 물리학에서는 관성이나 항상성이라고 표기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타인을 바꿀만한 힘이 없다. 나조차도 무언가를 바꾸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고작 인간이 타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확률상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이 것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밟아온 경험과 시간을 양분삼아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지적 허영심이 나쁘다고(잘못되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범죄자들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깊게 한번 생각해보자. 원인은 간단하다.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사기꾼이나 범죄자들이 잘못된 행동을 안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에서 나쁘다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아직도 부족한가? 그럼  또 다른 예시를 찾아볼까? '대기중에 공기가 나쁘다' 라는 뉴스 기사를 많이들 접해보았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는 공기가 나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인과관계가 어떻든 간에 나쁜것(잘못된 것)을 하지 않거나 바로잡으려는 욕구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적 허영심은 나쁘다(잘못된)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은 스노비즘을 비판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주 극단적인 예시로 평생 스노비즘에 빠져 사는 어리석은 인간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MZ세대들을 위해 아주 간단히 예시를 들자면(간단한 예시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형광 반바지에 구찌 클러치 백을 들고있는 군상들도 스노비즘의 일부라고 봐도 문제 없을 것 같다.(우리가 이들을 나쁘게 보는 이유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한다.) 아무튼 우리는 저들을 전혀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의 첫번 째 문단부터 항상성이니 등의  물리학 법칙을 읊어놓은 것이다. 물론 주변에 스노비즘에 쩔어있는 인간을 보다보면 자연스레 비호감을 사기에 너무 좋다. 너무 극단적인 스노비즘은 본인의 사회적 지능 측면에서는 당연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게 사실이지만, 뭐든지 과하면 배탈이 나는 법.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잘 조절하길 바란다.

 

[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나랑 뭔 상관인데? ]

 

   슬슬 이쯤되면 '그래서 뭐 어쩌란거야?'  '내 인생이랑 스노비즘이 뭔상관인데? ' 등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면 솔직히 조금 서운할 뻔 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스노비즘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고 있는 멍청한 인간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내가 스노비즘을 마냥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손가락이 빠지도록 설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허영심 따위를 이용해야한다. 그게 뭔 소리냐고 따지는 독자들은 아직 지적 허영심은 나쁜 것이라는 집념이 떠나가지 않은 것이다. 나쁜게 아니라면 이용하지 못할 것이 또 어디있는가 ! 소설이나 만화를 제외하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적성에 너무 알맞은 터라 독서라는 행위가 즐거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대부분이 허영심을 이용해 책을 읽는다. 인스타그램을 빛내줄 인테리어가 되기도 하며, 소개팅에서 지적인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 메이커로써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로 정신적 안정감을 갖게 해주는 일종의 자위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허영심'이 기반이 되는 행동들이며 위에 말했다시피 결코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결과론적으로 이들은 허영심을 위해서든 아니든 책을 읽는다.  이러한 행위는 인생에 있어서 작은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지적허영심이다. 당신이 책이라는 것을 읽는다는 허영심을 자극하라. 당신이 남들보다 지적인 생명체라는 허영은 때때로 엄청난 쾌감을 선물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책과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 계기는 지적허영심이 크게 작용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간간히 교보문고에서 쇼핑을 즐기는 취미도 있었지만 이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나의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는 예전에 우연히 사회 진화적인 남녀의 차이를 다루는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의 <소모되는 남자> 를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라면받침에 불과한 종잇덩어리였겠지만 나에게는 인생을 바꿔준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세상이 달라보였다. 마치 매트릭스 1에 나오는 빨간 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기본적인 인간 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의 매커니즘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해 돌아가는 것 처럼 보였고 인간들의 행동과 유형들이 전부 0과1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그 이후 나의 인생에 있어서 독서와 글쓰기는 삶의 양분이자 배설물이 되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통찰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정작 위험한 요소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자만'이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던 초반의 나는 세상 모두를 이해한 것 같았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을 깔보게 되고 , 심지어 유전적인 요소를 개입해 비난 하는 일도 있었다. 모든 건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생각들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들이었다.

이에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 '더닝 크루거 효과' 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스노비즘...너란 녀석...좋은 놈이었을지도..? ]

 

   여기까지 차분히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아마 거의 없겠지만 있다면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요즘것들은 글이란 걸 읽기 싫어하니 ..에잉 ㅉㅉ) 뭐든 과유불급 이라고 했던가. 내가 여태껏 변호했던 스노비즘도 당연히 적절히 나의 연료로써 사용했을 때 좋다는 것이지, 남들을 기만하거나 지식을 과시하는(술자리에서 개노잼임) 행위는 당신의 사회적 지위를 곤두박질 치도록 부채질을 할 것이다. 사실 독서를 추천하는 이유! 따위는 유튜브나 초등학교 교사들이 하도 많이 떠들어대서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그렇게 떠들어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를 안한다. 해야햐는 걸 알면서도 안한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싶다. 내가 이 글을 읽는 인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유는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글을 올려도 진지하게 읽는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면 성공한다고 본다. 왜냐면.. 아까도 말했듯. 사람은 안 변하니까 ! 

 

 

 

   그렇다 ! 학창시절엔 똑같은 수능문제를 가지고 몇번으로 마킹하냐에 따라 서열이 나뉘어졌다. 하지만 당신이 성인이라면 앞으로 5지선다와 같은 친절한 답안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문제가 닥치던 간에 그걸 푸는 사람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조차 수 많은 의사 결정을 따라 이 페이지 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솔로몬이 그토록 원했던 '지혜'는 결코 공부 따위로 얻을 수 없었다.

 

-   당신이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1. 주변을 둘러봐라(주위엔 평범한 사람들 뿐이다)

2.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봐라

3. 그들이 살고있는 방법의 반대로 살면 된다. 

 

요즘 1~20대는 10명중 8명이 독서를 안한다. (파레토 법칙)

지금껏 당신은 20%와80%중 어디에 속해있었을까?

이런 주제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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